[9층시사국] 발달장애, 조금 느려도 괜찮아

입력 2023.05.03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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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층시사국 14회 II] 발달장애, 조금 느려도 괜찮아

■ 자라나라. 피어나라. 새싹을 움트게 하라. 헤르만 헤세 <봄의 말>

모든 것이 자라나는 5월, 아이들도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조금 늦게 자라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입니다.

최송화 / 소아재활병원 작업치료사
저를 알아봐주고 제가 누구야 하고 이름 불렀을 때 반응해 주고 웃고 저를 향해서 와주는 그때 가장 행복한 것 같고. 아이들이 하나씩 나아가는 모습 볼 때마다 그때 가장 뿌듯한 것 같습니다.

느리더라도 이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우리는 준비가 돼 있을까요?

■ "치료비로 한 달에 수백만 원씩 쓸 수밖에"

기다리던 태양이가 왔습니다. 8살 태양이..
하지만 발달 단계는 두 돌 된 아이들과 비슷합니다.
엄마 손을 꼭 잡고, 소아 재활치료 병원으로 향합니다.
반복되는 치료는 태양이가 감당하기엔 힘겹습니다.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최송화 / 소아재활병원 작업치료사
태양이가 음식 먹는 데 있어서 제가 처음 맡았을 때는 씹는 것도 한 번에서 두 번 정도 씹고 삼키는 것도 많고 음식 먹는 거에도 제한이 많아서 구강을 시작하고 씹는 횟수도 점점 늘어나고 혀 움직임이랑 입술 움직임도 많이 좋아졌어요. 그래서 언어적인 도움도 있지만 입으로 먹는 게 영양에도 관련이 많이 돼서 구강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태양이가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
한 번의 치료도 빼먹을 수가 없습니다.

기자: 태양이 치료 일주일에 얼마나..
양태양 군 어머니: 매일 있어요, 매일.
기자: 매일이요? 하루에 보통 몇 시간 정도 걸려요?
양태양 군 어머니: 짧게는 1시간? 길게는 2시간.

다른 부모들은 한 달에 수백만 원씩 쓴다는데 어려운 살림에 한숨부터 나옵니다.

양태양 군 어머니 /
그렇죠. 경제적인 여유가 돼서 하는 부모들은 없는 것 같아요, 솔직히. 그런데 아이를 위한 거니까 어떻게든 절약하고 절약해서 다니는 것 같은데 (치료비가 한 달에)진짜 대개 몇백만 원이에요, 단위가 일단 몇십 만 원의 단위가 아니라 이제 몇백만 원의 단위를 쓰고 있죠. 엄청 비용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죠.

건강보험의 소아 재활치료 수가는 한 시간에 3만 원대. 이 중에서 환자 부담은 10% 수준입니다.
하지만 비급여 병원을 가면 치료비는 한 시간에 5~10만 원으로 껑충 뜁니다.
환자 입장에선 한 시간 치료비 부담이 많게는 30배 가까이 늘어나는 셈입니다.
그런데,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병원, 많지 않습니다.

구명회 원장/강서큰나무재활의학과의원
인구 천만의 도시 서울에서 저희 같이 건강보험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은 (대학병원을 제외하면) 10개도 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 소아재활 의료기관의 경우 건강보험의 기준 수가가 치료 원가의 채 80%도 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이들을 많이 치료할수록 더 손해인 겁니다.

김명옥/소아재활·발달의학회 회장
건강보험 수가만 갖고 병원을 운영하는데는 20퍼센트 이상의 적자를 고스란이 떠안을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보니까 어떻게 보면 이제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어떤 그냥 의지와 또 그냥 어떻게 보면 애정만으로 이걸 또 희생 만으로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서울의 사정이 이런데, 지방은 훨씬 열악합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병원을 찾아 수도권으로 올라오는 이른바 ‘재활난민’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강선우 / 국회 보건복지위위원회 위원
발달장애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님들이 아이들 거점병원 가서 서비스 받으려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서 살아요. (지방에 사는 경우엔) 부모님 중에 한 분이 아이 데리고 서울이나 수도권에 와서 거기서 생활을 하시거든요. 여관에서도 생활하시고 이제 여관에서 자고 빨래하고 먹고 다 해결하시고 병원 가서 치료 받고. 접근 가능한 데가 하나만 있어도 그거는 안 해도 되잖아요. 그래 가지고 난민 생활은 안 해도 되는 거잖아요.

■ 발달장애 민간병원 낮은 건강보험 수가로 '폐업 위기'…발달장애인 거점병원 '부족'

남현종/9층시사국 MC
아이가 아프지 않도록 한 번이라도 더 제대로 된 치료를 받게 해 주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일 텐데, 재활 난민까지 생기고 있다는 게 참 안타깝습니다. 결국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소아 재활 병원이 적다는 게 문제인데 그나마 있던 민간 병원마저 폐업을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라고요?

정연우/9층시사국 기자
네, 맞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수가가 턱없이 낮다 보니까 어린이 재활치료를 하겠다는 병원들이 줄어들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제가 취재한 병원 같은 경우에는 성인 재활치료를 해서 번 돈으로 소아 재활치료를 하는 병원의 적자를 메우고 있는, 그 정도로 심각한 실정이었습니다. 그나마 사정이 낫다는 수도권에서도 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병원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겁니다.

구명회 원장/강서큰나무재활의학과의원
중증장애아동을 건강보험으로 치료하는 것이 수가가 원가에 미치지 못한다는 걸 정부도 알고 있습니다. 수도권에서 이런 중증장애아동들을 건강보험으로 치료하는 병원들이 하나 둘 사라지게 되면, 많은 장애아동들이 건강보험으로 치료받을 기회를 잃게 되는 거고요. 특히 비보험으로도 치료 받을 수 없는 취약계층 아동들은 또 다시 재활난민처럼 돼서 병원을 찾아서 떠돌아야 되는데 매우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남현종/9층시사국 MC
수익 때문에, 적자 때문에 민간 병원에서 시행하기가 어렵다면 정부 차원에서 공공 병원을 늘리는 건 어떻습니까?

정연우/9층시사국 기자
물론 괜찮은 방법입니다. 일단 민간 병원에 대한 지원책 자체가 지금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걸 빨리 다듬어야겠고요. 동시에 공공 병원 늘리면 더 좋겠습니다.

사실 문재인 정부 출범 때 이미 어린이 재활의료 인프라 확충하겠다는 게 국정 과제로 선정이 됐었습니다. 그래서 복지부가 전국에 권역별로 공공 어린이재활병원 의료센터 건립을 추진했었거든요.
그런데 이 사업이 2018년에 시작됐는데 지금 윤석열 정부 출범하고 1년이 다 돼가는데 지금까지도 아직 문을 연 곳이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심지어 발달장애 어린이들을 위한 병원은 고사하고 발달장애인을 위한 거점 병원조차 부족한 게 현실인데요. 실제로 17개 전국 광역 지자체 중에 무려 아홉 곳에서 이 거점 병원이 없는 그런 상황입니다. 이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병원을 찾아서 전국을 떠도는 이른바 재활 난민이 되는 이유입니다.

남현종/9층시사국 MC
치료 한 번 제대로 받기 힘들다 보니까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그렇고 부모님들도 그렇고 체력도 체력이지만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 것 같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까 지금 병원들도 마찬가지로 힘든 상황이고요.

정연우/9층시사국 기자
부모님들 또 아이들, 병원들, 모두 힘든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희가 또 하나 주목한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다른, 또 다른 아이들인데요. 이 발달장애아 가정에 이 아이들을 형제 또는 자매로 둔 아이들, 이 아이들이 어떻게 소외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저희가 취재했습니다.

■ 발달장애 가정의 또다른 아이들에게도 관심이 필요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8살 진유가 학교를 마치고 나서는 시간. 엄마의 옆에는 9살짜리 오빠가 있습니다.
학교 앞 놀이터를 찾았습니다.
발달이 느린 진유가 재활병원을 가려면 아직 한 시간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나란히 앉은 남매의 그네를 힘차게 밀어주고..
시소에 마주 앉아 오르고 내리자, 금세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엄마도 웃고 있지만 말 못할 고민은 깊어만 갑니다.

김진유 양 어머니
좀 아무래도 얘 위로도 오빠가, 얘 말고도 오빠가 하나 더 있는데 걔도 장애가 있어서. 걔도 아무래도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까 (아픈 아이가) 하나면 뭐 어떻게든 되겠는데 저희 집 같은 경우에는 3명이고 둘 다 아파 가지고 좀 아무래도 (경제적) 부담이 많이 가더라고요.

돈 걱정은 나중 일이고 내내 진유를 챙기느라 바쁩니다.
9살 예준이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습니다.
속이 상할 만도 한데 예준이는 기다리던 엄마가 오자 힘내라며 뽀뽀를 퍼붓습니다.
누가 진유를 잠시라도 돌봐준다면
진유도, 예준이도 더 잘 키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엄마는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기자: 어떤 수업 들으시는 거예요?
김진유 양 어머니: 장애인 활동지원사.
기자: 지원사요?
김진유 양 어머니: 네.
기자: 어떤 이유로 듣기로 결정하셨던 거예요?
김진유 양 어머니: 어머니 원래는 그냥 크게 생각이 없었는데 저희 애기 활동지원 선생님을 구하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또 그래서 어차피 저희 애는 (제가 활동지원사 자격으로 돌보지) 못하니까 다른 분이 저희 애를 도와주실 때 저도 다른 애들 한번 도와주고 싶어 가지고 해 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엄마가 공부 하는 사이 진유 돌보기는 다시 예준이 몫이 됐습니다.
이제 고작 9살, 엄마에게도, 동생에게도 항상 듬직한, 속깊은 아이,
그래도 엄마의 사랑이 필요한 아입니다.

예준: 저 엄마한테 하고 싶어요.
기자: 엄마한테 무슨 말 하고 싶어?
예준: 사랑한다고.
기자: 사랑한다고?
예준: 네.
기자: 얼마나 사랑해?
예준: 만만큼. 천만큼. 엄마, 나 엄마 천만큼 사랑해요.

■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면 일상 생활은 안되나요? 지원만 있다면 가능합니다.

학교 선생님인 수현 씨는 자폐가 있는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두 아이들을 활동 지원사에게 맡겼다가 저녁 무렵에야 퇴근합니다.
자폐 진단을 받은 아이를 집에 두고 일하러 나간다는 것.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이수현/ 연우, 정우 어머니
부모가 보통 (아이가) 장애진단을 받으면 삶을 삶이 끝났다고 생각을 해요. 많이 절망을 하고 근데 저도 마찬가지였죠. 그래서 어, 당연히 복직도 못할 거라고 생각했고 아이를 위해서 평생 헌신을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한 거예요. 그랬는데 막상 아이들을 키우면서 보니까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부터 다르지 않고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을 해야 다른 사람의 인식도 개선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좀 용기를 냈죠. 나도 일상을 회복해야겠다. 그냥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야겠다.

한 때는 아이들의 장애를 숨겼었다는 수현 씨.
지금은 오히려 자신과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까지 냈습니다.

이수현/ 연우, 정우 어머니
처음엔 조금 사적인 것들이 많이 공개되니까 그런 마음이 있었지만 그래도 알리고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바꾸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서 제가 용기를 냈고요. 내고 난 다음에는 생각보다 그래도 반응이 굉장히 좋았어요. 대단하다. 그런 그런 평가가 많았고요.

힘겨운 시간들에 당당히 맞서며 누군가에겐 힘이 되기까지 했지만.
그런 수현 씨도 워킹맘이란 현실의 벽 앞에 좌절할 때가 있습니다.

이수현/ 연우, 정우 어머니
제가 일 하는 동안에 누군가 아이들을 돌봐줘야 하는데 어, 그게 사실은 현실적으로 가장 힘들죠. 근데 저희 가족중에는 도와줄 사람이 없고 그래서 제가 활동 지원사 제도를 이용하고 있는데 그것도 좀 현실적인 한계가 많아요. 활동 지원사 (정부 지원) 시간을 한 달 에 각 아이당 165시간을 지원 받고 있는데요. 근데 음 이 시간이 사실은 충분한 시간인데 지금 현재 (일반) 학교에서 아이들이 통합교육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 (활동 지원사) 선생님들이 또 학교 수업에도 지원을 나가세요. 그러다 보니까 좀 시간이 부족해요. 그래서 그 부족한 부분은 어떤 제 개인적인 사비로 충당을 해야 되고...

연우와 정우를 위해서라도 지치지 않기로, 힘을 내기로, 다짐합니다.

■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라" 영화 <원더>

우리나라 발달장애인 인구 25만여 명.

느리지만 천천히 자라고 있고.
느렸지만 천천히 자랐습니다.
느려도 괜찮습니다.

태양이에게
엄마 그냥 밝고 건강하게 남에게 피해가 안 가는, 그것도 참 어려운 건데
어쨌든 행복하게 이 아이만의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진유에게
어머니 천천히라도. 아주 천천히라도 좋으니까 좀 조금씩이나마 친구들과 비슷해질 수 있게. 완전 비슷해지지는 못하더라도 그 근처까지 가서 서로 어울릴 수 있을 정도로만 돼도 솔직히 만족하거든요.

연우, 정우에게
우리 연우 정우가 조금 다르긴하지만 누구보다 정말 소중한 존재이고 다른 사람들이 누구나 소중한 존재인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거 그거 꼭 기억하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취재기자: 정연우
외부촬영: 조선기
영상편집: 김대영
자료조사: 오석진
조연출: 유화영, 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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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03 23: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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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라나라. 피어나라. 새싹을 움트게 하라. 헤르만 헤세 <봄의 말>

모든 것이 자라나는 5월, 아이들도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조금 늦게 자라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입니다.

최송화 / 소아재활병원 작업치료사
저를 알아봐주고 제가 누구야 하고 이름 불렀을 때 반응해 주고 웃고 저를 향해서 와주는 그때 가장 행복한 것 같고. 아이들이 하나씩 나아가는 모습 볼 때마다 그때 가장 뿌듯한 것 같습니다.

느리더라도 이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우리는 준비가 돼 있을까요?

■ "치료비로 한 달에 수백만 원씩 쓸 수밖에"

기다리던 태양이가 왔습니다. 8살 태양이..
하지만 발달 단계는 두 돌 된 아이들과 비슷합니다.
엄마 손을 꼭 잡고, 소아 재활치료 병원으로 향합니다.
반복되는 치료는 태양이가 감당하기엔 힘겹습니다.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최송화 / 소아재활병원 작업치료사
태양이가 음식 먹는 데 있어서 제가 처음 맡았을 때는 씹는 것도 한 번에서 두 번 정도 씹고 삼키는 것도 많고 음식 먹는 거에도 제한이 많아서 구강을 시작하고 씹는 횟수도 점점 늘어나고 혀 움직임이랑 입술 움직임도 많이 좋아졌어요. 그래서 언어적인 도움도 있지만 입으로 먹는 게 영양에도 관련이 많이 돼서 구강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태양이가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
한 번의 치료도 빼먹을 수가 없습니다.

기자: 태양이 치료 일주일에 얼마나..
양태양 군 어머니: 매일 있어요, 매일.
기자: 매일이요? 하루에 보통 몇 시간 정도 걸려요?
양태양 군 어머니: 짧게는 1시간? 길게는 2시간.

다른 부모들은 한 달에 수백만 원씩 쓴다는데 어려운 살림에 한숨부터 나옵니다.

양태양 군 어머니 /
그렇죠. 경제적인 여유가 돼서 하는 부모들은 없는 것 같아요, 솔직히. 그런데 아이를 위한 거니까 어떻게든 절약하고 절약해서 다니는 것 같은데 (치료비가 한 달에)진짜 대개 몇백만 원이에요, 단위가 일단 몇십 만 원의 단위가 아니라 이제 몇백만 원의 단위를 쓰고 있죠. 엄청 비용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죠.

건강보험의 소아 재활치료 수가는 한 시간에 3만 원대. 이 중에서 환자 부담은 10% 수준입니다.
하지만 비급여 병원을 가면 치료비는 한 시간에 5~10만 원으로 껑충 뜁니다.
환자 입장에선 한 시간 치료비 부담이 많게는 30배 가까이 늘어나는 셈입니다.
그런데,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병원, 많지 않습니다.

구명회 원장/강서큰나무재활의학과의원
인구 천만의 도시 서울에서 저희 같이 건강보험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은 (대학병원을 제외하면) 10개도 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 소아재활 의료기관의 경우 건강보험의 기준 수가가 치료 원가의 채 80%도 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이들을 많이 치료할수록 더 손해인 겁니다.

김명옥/소아재활·발달의학회 회장
건강보험 수가만 갖고 병원을 운영하는데는 20퍼센트 이상의 적자를 고스란이 떠안을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보니까 어떻게 보면 이제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어떤 그냥 의지와 또 그냥 어떻게 보면 애정만으로 이걸 또 희생 만으로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서울의 사정이 이런데, 지방은 훨씬 열악합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병원을 찾아 수도권으로 올라오는 이른바 ‘재활난민’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강선우 / 국회 보건복지위위원회 위원
발달장애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님들이 아이들 거점병원 가서 서비스 받으려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서 살아요. (지방에 사는 경우엔) 부모님 중에 한 분이 아이 데리고 서울이나 수도권에 와서 거기서 생활을 하시거든요. 여관에서도 생활하시고 이제 여관에서 자고 빨래하고 먹고 다 해결하시고 병원 가서 치료 받고. 접근 가능한 데가 하나만 있어도 그거는 안 해도 되잖아요. 그래 가지고 난민 생활은 안 해도 되는 거잖아요.

■ 발달장애 민간병원 낮은 건강보험 수가로 '폐업 위기'…발달장애인 거점병원 '부족'

남현종/9층시사국 MC
아이가 아프지 않도록 한 번이라도 더 제대로 된 치료를 받게 해 주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일 텐데, 재활 난민까지 생기고 있다는 게 참 안타깝습니다. 결국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소아 재활 병원이 적다는 게 문제인데 그나마 있던 민간 병원마저 폐업을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라고요?

정연우/9층시사국 기자
네, 맞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수가가 턱없이 낮다 보니까 어린이 재활치료를 하겠다는 병원들이 줄어들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제가 취재한 병원 같은 경우에는 성인 재활치료를 해서 번 돈으로 소아 재활치료를 하는 병원의 적자를 메우고 있는, 그 정도로 심각한 실정이었습니다. 그나마 사정이 낫다는 수도권에서도 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병원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겁니다.

구명회 원장/강서큰나무재활의학과의원
중증장애아동을 건강보험으로 치료하는 것이 수가가 원가에 미치지 못한다는 걸 정부도 알고 있습니다. 수도권에서 이런 중증장애아동들을 건강보험으로 치료하는 병원들이 하나 둘 사라지게 되면, 많은 장애아동들이 건강보험으로 치료받을 기회를 잃게 되는 거고요. 특히 비보험으로도 치료 받을 수 없는 취약계층 아동들은 또 다시 재활난민처럼 돼서 병원을 찾아서 떠돌아야 되는데 매우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남현종/9층시사국 MC
수익 때문에, 적자 때문에 민간 병원에서 시행하기가 어렵다면 정부 차원에서 공공 병원을 늘리는 건 어떻습니까?

정연우/9층시사국 기자
물론 괜찮은 방법입니다. 일단 민간 병원에 대한 지원책 자체가 지금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걸 빨리 다듬어야겠고요. 동시에 공공 병원 늘리면 더 좋겠습니다.

사실 문재인 정부 출범 때 이미 어린이 재활의료 인프라 확충하겠다는 게 국정 과제로 선정이 됐었습니다. 그래서 복지부가 전국에 권역별로 공공 어린이재활병원 의료센터 건립을 추진했었거든요.
그런데 이 사업이 2018년에 시작됐는데 지금 윤석열 정부 출범하고 1년이 다 돼가는데 지금까지도 아직 문을 연 곳이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심지어 발달장애 어린이들을 위한 병원은 고사하고 발달장애인을 위한 거점 병원조차 부족한 게 현실인데요. 실제로 17개 전국 광역 지자체 중에 무려 아홉 곳에서 이 거점 병원이 없는 그런 상황입니다. 이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병원을 찾아서 전국을 떠도는 이른바 재활 난민이 되는 이유입니다.

남현종/9층시사국 MC
치료 한 번 제대로 받기 힘들다 보니까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그렇고 부모님들도 그렇고 체력도 체력이지만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 것 같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까 지금 병원들도 마찬가지로 힘든 상황이고요.

정연우/9층시사국 기자
부모님들 또 아이들, 병원들, 모두 힘든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희가 또 하나 주목한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다른, 또 다른 아이들인데요. 이 발달장애아 가정에 이 아이들을 형제 또는 자매로 둔 아이들, 이 아이들이 어떻게 소외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저희가 취재했습니다.

■ 발달장애 가정의 또다른 아이들에게도 관심이 필요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8살 진유가 학교를 마치고 나서는 시간. 엄마의 옆에는 9살짜리 오빠가 있습니다.
학교 앞 놀이터를 찾았습니다.
발달이 느린 진유가 재활병원을 가려면 아직 한 시간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나란히 앉은 남매의 그네를 힘차게 밀어주고..
시소에 마주 앉아 오르고 내리자, 금세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엄마도 웃고 있지만 말 못할 고민은 깊어만 갑니다.

김진유 양 어머니
좀 아무래도 얘 위로도 오빠가, 얘 말고도 오빠가 하나 더 있는데 걔도 장애가 있어서. 걔도 아무래도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까 (아픈 아이가) 하나면 뭐 어떻게든 되겠는데 저희 집 같은 경우에는 3명이고 둘 다 아파 가지고 좀 아무래도 (경제적) 부담이 많이 가더라고요.

돈 걱정은 나중 일이고 내내 진유를 챙기느라 바쁩니다.
9살 예준이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습니다.
속이 상할 만도 한데 예준이는 기다리던 엄마가 오자 힘내라며 뽀뽀를 퍼붓습니다.
누가 진유를 잠시라도 돌봐준다면
진유도, 예준이도 더 잘 키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엄마는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기자: 어떤 수업 들으시는 거예요?
김진유 양 어머니: 장애인 활동지원사.
기자: 지원사요?
김진유 양 어머니: 네.
기자: 어떤 이유로 듣기로 결정하셨던 거예요?
김진유 양 어머니: 어머니 원래는 그냥 크게 생각이 없었는데 저희 애기 활동지원 선생님을 구하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또 그래서 어차피 저희 애는 (제가 활동지원사 자격으로 돌보지) 못하니까 다른 분이 저희 애를 도와주실 때 저도 다른 애들 한번 도와주고 싶어 가지고 해 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엄마가 공부 하는 사이 진유 돌보기는 다시 예준이 몫이 됐습니다.
이제 고작 9살, 엄마에게도, 동생에게도 항상 듬직한, 속깊은 아이,
그래도 엄마의 사랑이 필요한 아입니다.

예준: 저 엄마한테 하고 싶어요.
기자: 엄마한테 무슨 말 하고 싶어?
예준: 사랑한다고.
기자: 사랑한다고?
예준: 네.
기자: 얼마나 사랑해?
예준: 만만큼. 천만큼. 엄마, 나 엄마 천만큼 사랑해요.

■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면 일상 생활은 안되나요? 지원만 있다면 가능합니다.

학교 선생님인 수현 씨는 자폐가 있는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두 아이들을 활동 지원사에게 맡겼다가 저녁 무렵에야 퇴근합니다.
자폐 진단을 받은 아이를 집에 두고 일하러 나간다는 것.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이수현/ 연우, 정우 어머니
부모가 보통 (아이가) 장애진단을 받으면 삶을 삶이 끝났다고 생각을 해요. 많이 절망을 하고 근데 저도 마찬가지였죠. 그래서 어, 당연히 복직도 못할 거라고 생각했고 아이를 위해서 평생 헌신을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한 거예요. 그랬는데 막상 아이들을 키우면서 보니까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부터 다르지 않고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을 해야 다른 사람의 인식도 개선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좀 용기를 냈죠. 나도 일상을 회복해야겠다. 그냥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야겠다.

한 때는 아이들의 장애를 숨겼었다는 수현 씨.
지금은 오히려 자신과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까지 냈습니다.

이수현/ 연우, 정우 어머니
처음엔 조금 사적인 것들이 많이 공개되니까 그런 마음이 있었지만 그래도 알리고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바꾸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서 제가 용기를 냈고요. 내고 난 다음에는 생각보다 그래도 반응이 굉장히 좋았어요. 대단하다. 그런 그런 평가가 많았고요.

힘겨운 시간들에 당당히 맞서며 누군가에겐 힘이 되기까지 했지만.
그런 수현 씨도 워킹맘이란 현실의 벽 앞에 좌절할 때가 있습니다.

이수현/ 연우, 정우 어머니
제가 일 하는 동안에 누군가 아이들을 돌봐줘야 하는데 어, 그게 사실은 현실적으로 가장 힘들죠. 근데 저희 가족중에는 도와줄 사람이 없고 그래서 제가 활동 지원사 제도를 이용하고 있는데 그것도 좀 현실적인 한계가 많아요. 활동 지원사 (정부 지원) 시간을 한 달 에 각 아이당 165시간을 지원 받고 있는데요. 근데 음 이 시간이 사실은 충분한 시간인데 지금 현재 (일반) 학교에서 아이들이 통합교육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 (활동 지원사) 선생님들이 또 학교 수업에도 지원을 나가세요. 그러다 보니까 좀 시간이 부족해요. 그래서 그 부족한 부분은 어떤 제 개인적인 사비로 충당을 해야 되고...

연우와 정우를 위해서라도 지치지 않기로, 힘을 내기로, 다짐합니다.

■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라" 영화 <원더>

우리나라 발달장애인 인구 25만여 명.

느리지만 천천히 자라고 있고.
느렸지만 천천히 자랐습니다.
느려도 괜찮습니다.

태양이에게
엄마 그냥 밝고 건강하게 남에게 피해가 안 가는, 그것도 참 어려운 건데
어쨌든 행복하게 이 아이만의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진유에게
어머니 천천히라도. 아주 천천히라도 좋으니까 좀 조금씩이나마 친구들과 비슷해질 수 있게. 완전 비슷해지지는 못하더라도 그 근처까지 가서 서로 어울릴 수 있을 정도로만 돼도 솔직히 만족하거든요.

연우, 정우에게
우리 연우 정우가 조금 다르긴하지만 누구보다 정말 소중한 존재이고 다른 사람들이 누구나 소중한 존재인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거 그거 꼭 기억하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취재기자: 정연우
외부촬영: 조선기
영상편집: 김대영
자료조사: 오석진
조연출: 유화영, 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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